우리는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과 의견이 맞지 않을 경우 대화나 회의를 통해 이견을 좁혀갈 수 있어야 한다.
회의는 서로가 수긍할 만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변증법적 접근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아하고 전문적인 회의 진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절대 멱살을 잡거나, 고성을 지르거나 욕설을 하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아하게 회의를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시대에 그렇게 많은 회의가 열리는 이유이다.
때로는 다른 의견들을 조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슷한 의견을 공유하기 위해 회의를 하기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이 비슷하지만, 같은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회의를 개최하고 그 생각을 확정한다. 이런 회의의 경우 확정된 의사결정을 문서화 하여 정당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비록 비슷한 의견을 확정하는 자리라 해도 역시 누군가 삼천포로 빠지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쉬워 보이는 자리도 회의 진행 하는 사람의 스킬이 필요하다.

즉 모든 사람의 모임, 회합에는 사회를 보고 진행하는 회의의 진행자가 필요하고 그 사람의 역할은 전체 모임의 성공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과거 왕이나 귀족이 의사결정을 독점하던 시절에도 형식적으로 회의는 열렸다. 거수기들이지만 회의에 사람을 모아 놓고, 손을 들게 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합병하는 침략 자리에서도 짜여 진 각본이지만, 마치 두 나라가 협상을 통해 뭔가 결론을 도출했다는 식의 요식행위는 필요했다. 그래서 친일파들을 모아 놓고, 형식적으로 회의를 했다.
회의는 이렇게 미리 정해진 결론을 정당화하는 기만적인 행위로 전락되는 경우도 있다. 작든 크든 회의는 국회에서부터 작은 마을의 반상회까지 전국에서 매일 열리고 있으며 싫든 좋든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회의에 참여하는 일원이 된다.
회의를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함께 참여한 많은 사람들 의견의 총합이라는 명분을 얻기 위함이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상을 주거나 할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회의다. 비록 자유로운 의견 진술의 기회가 없었다 해도 회의에 참가한 사람은 그 회의의 결론을 함께 만든 사람이라는 멍에를 짊어져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강압에 의하거나, 절차상 하자가 있는 경우,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것도 의사표시가 된다. 절대 억지로 회의에 참여하면 안 된다.
그래도 회의는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편이 훨씬 낫고, 회의를 하게 되면 최소한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 질 수 있다. 따라서 회의는 힘을 가진 사람보다는 힘없는 사람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사실 의사결정을 온전히 혼자 할 수 있을 정도의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굳이 회의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 그저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혼자 결정한 사항을 밀고 나가면 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아무리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이라도 절차와 규정이 있어 모든 일을 홀로 결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역행하는 일이다. 아무리 힘을 가진 자라도 형식적인 회의는 해야 하는 것이다.

회의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함이다. 지역이나 모임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큰 문제나 난제를 만났을 때 리더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보다는 구성원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편이 훨씬 효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오랜 기간 소모적으로 회의를 한다 해도 거듭되는 회의를 통해 멀리만 보이던 합의나 해결책이 점점 다가오는 경험은 회의를 많이 해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만일 회의에서 나온 결론대로 일을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해도 구성들이 참여한 회의를 통해 얻은 결론이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책임을 한 사람이 모두 짊어질 필요는 없다. 그래서 소모적이고 늘 옳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회의는 하는 것이 맞다.
날카롭게 의견이 대립하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 일수록 회의를 통한 수렴과정이 필요하다. 만일 회의를 통한 의견 수렴이 아니라면, 우리는 선사시대로 돌아가 서로 돌도끼를 들고 상대방을 굴복시켜야 할 것이다. 이견이 너무 커서 처음 만났을 때 각을 세우며 성질을 내던 사람들도 같은 주제를 가지고 반복적인 회의를 하게 되면 상당부분 의견의 합의가 이루어 질 때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의 서울 제 2 시립화장장 건립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회의를 한 것이다. 화장장 건설 발표가 난 뒤 무려 14년 동안 행정소송의 해결과 화장장 유치를 위한 회의가 지루하게 이어졌다. 오랜 세월 많은 회의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2012년 서울 제2화장장은 문을 열 수 있었다.